[갤러리이배] Working and Living - 2023. 07. 11. (화). - 2023. 09. 02. (토).
갤러리이배
부산
2023-07-11~2023-09-02

 


 

과거에는 사회적 통념을 넘어선 도전적인 소수의 여성작가들이 존재했으나 현대미술에서 여성작가의 역할은 매우 보편적이며 그 비중도 과히 괄목할 만하다. 민감한 사회적 주제와 젠더개념은 더 이상 주요 관심사가 아니며 화가로서 여성들이 사회와 소통하면서 자신을 성장시키며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가 그리기로 귀결된다. 즉 지극히 개인적인 그들의 사고와 행위가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다. 갤러리이배는 이번 기획 전시에서 그리기와 살아가기를 동일한 선상에서 실천하면서 30대부터 60대까지 서로 다른 세대를 살아가는 4명의 여성작가를 통해 그들의 그리기의 목적이 곧 삶이며 자아 발견임을 확신하고, 삶을 통찰하는 보편적인 관심사와 진리는 세대와 무관함을 확인하고자 한다.

 

30대 김시원 작가에게 회화는 자신이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을 탐구하며 해방시키는 과정이자 결과로서 매우 개인적인 영역이다. 신체의 다양한 감각 신호들이 피부 즉 캔버스를 자극하여 서로 끼워 맞춰지거나 포개어져 작가의 자아를 드러낸다. 자발적인 의지와 무의식적인 욕망이 캔버스를 매개로 의미가 생성된다. 시각적이면서 동시에 언어적인 작용을 하는 텍스트는 움직이는 감정의 형태를 드러내는 한편, 몸이 말하는 소리이다. 몸의 궤적이 고스란히 남은 현장에서 작가가 느끼는 것은 다름 아닌 자유이며 몰입의 기쁨이다. 문맥을 만들거나 삭제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적절한 경계를 찾아가는 작가의 작품은 오롯이 직관적 감각만이 살아있는 단순하고 강한 형태로서 표현된다.

 

40대 정직성 작가는 회화가 지닌 윤리적, 영적 역할과 역량에 관심을 기울인다. 연립주택, 푸른 기계, 녹색 풀 연작을 비롯해 공사장 추상, 밤 매화, 현대자개회화 연작에 이르는 일련의 작업들은 민중미술과 형식주의 미술의 대립구도, 추상과 구상의 이분법을 뛰어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담은 결과물들이다. 작가는 최근 부재하거나 부재할 대상을 상기하면서 펼쳐지는 기억과 현실의 감각, 그리고 우리가 공감각적으로 연결해서 느낄 수 있는 장을 수사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회화 작품에 기대하는 비의적, 압축적인 무게감을 덜고 변주와 반복의 기쁨, 그리고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 화가로서 작가는 순환하는 삶의 수레바퀴 속에서 또 다른 편린의 삶을 살아내는 자신의 경험, 일상과 환상을 회화의 형식으로 형상화하여 다른 이들과 진동하고자 한다.

 

 

50대 이진이 작가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새롭거나 두려울 것 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의 소재를 시각언어로 제시한다. 작가는 일상의 사소한 장면을 포착하지만 무미건조하게 사물을 그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입을 통해 자기 내면의 페이소스를 전달한다. 작가는 아주 평범한, 그냥 흘러가버려 의식되지도 않는 일상의 한순간을 고전적 회화의 방식으로 견고하게 성립시켜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전형적인 386세대인 그녀는 '이념''역사'라는 거대 서사를 정점으로 요동쳤던 시대를 뛰어넘어 '개인''일상'의 세계가 돋보이는 미시 서사로 시선을 돌렸다. 이것이 서양화가로서 작가가 세계와 소통하고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방법이며, 그녀의 그리기는 작가의 평범하지만 비범한 일상이 우리와 공유되는 과정이다.

 

60대 염진욱 작가의 패턴화 된 숲화를 보면 작가에게 있어 회화의 본질은 노동집약적 그리는 행위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그리는 행위가 붓으로, 그 붓은 다시금 색으로, 색은 숲의 형태가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작가가 촘촘히 수를 놓듯 한 땀 한 땀 그려낸 단색조의 대형화면은 숲의 이미지로 표현되지만 노동에 천착한 작가의 창작행위이며 작가의 삶 그 자체를 드러내고 있다. -노동이 화면의 흐름을 주도하여 탄생한 작품에서는 산맥을 따라 유유히 흐르는 운무, 천둥번개가 치고 난 후 햇빛에 모습을 드러낸 밝고 어둠이 대조적인 산봉우리, 칠흑 같은 어둠이 짙게 깔린 구름 속에 침잠한, 화면의 하단에서 상단으로 전개돼 어둠이 지배하는 화면의 공간이 공감을 풍요롭게 한다.

 

 

 

김시원 작가는 1988년 충남 예산 출생으로 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영어학을, 동대학원 The Slade School of Fine Art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최우수학생으로 졸업하였다. 2014년 귀국하여 현재까지 국내에 머무르며 작업 활동을 하고 있다. 정직성 작가는 1976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 베를린 등 다수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2002년에 시작한 <연립 주택>연작 등 도시의 풍경을 특유의 추상적인 필치로 표현한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진이 작가는 1969년 부산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하였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염진욱 작가는 1964년 부산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현재 전업 작가로서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9년 스위스 바젤에서 작품이 소개된 후 파리, 아부다비, 홍콩 등 연이은 전시를 통해 국제적으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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