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MIN HAN
이민한
경계에 서다
2022.10.7.금-11.20.일
Open 2022.10.7.금.pm6시
나의 길을 가다 - 경계에 서서.
이민한,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자, 어느 봄날에 그려진 듯한 달빛을 품은 홍매화와 백매화가 수려한 자태로 먼저 인사를 건네 왔다. 한창 작업 중인, 물살을 거슬러 뛰노는 숭어를 보고 있자니 어해도 중 삼여도와 구여도에 대한 부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밖에 물 시리즈, 바람 시리즈, 그리고 한국화라고 보기엔 너무나 현대적인 극도의 단순과 절제를 표현한 작품들을 두루 둘러보며, 이번 전시를 어떻게 풀어갈지 소통의 갈피를 찾으려는 순간, 강이 흐르는 구도의 단순한 흑백 그림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짙은 먹색의 이쪽과 저쪽의 경계에 강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피안의 강처럼...
어쩌면 그는 지금, 그의 작품 속 적음의 새가 되어 저 강의 경계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채움과 비움, 실제와 허상,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 서서 건너야 할 강물을 대면하고 있는 그가 느껴졌다.
살면서 맞닥뜨리는 운명 같이 건너야 할 강들...
그 강은, 한국화라는 맥 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작가가 견뎌야 할 인고의 강일 것이다.
정신과 이상의 중요성이 강조된 수많은 점과 선으로 표현되었던 관념적이고 은유적인 그의 수묵 화면은 이제 형식의 경계를 허물고 극도의 단순한 선과 면이 정중동의 자태로 현재의 시간을 아리하게 투영하고 있었다.
한국적 정체성과 절제미를 그대로 지닌 체...
그림 속 절제된 듯 흔들리는 그림자와 윤슬은 지금의 그를 대변하는 모습과도 같았다.
물아일체(物我一體), 물심일여(物心一如) 자연물과 자아가 하나로 일치된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 화법이 공존하는 진솔한 화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갈 길을 잃었다고 말하면서도 지향하는 바대로 꿋꿋이 나의 길을 가고 있는 그가 작가로서 위대하게 보였다.
그가 건너야 할 강에 금빛 윤슬이 흐른다.
부디 그 강을 잘 노 저어 가길 바라며, 흔들림 없는 직관이 그와 오래도록 인연이 되어주길 바램 해본다.
이번 전시에서는 관물청심(觀物聽心), 적음(寂音), 도약(跳躍), 공유허실(空有虛實), 바람결 신작과 단색의 선과 면의 절제미 있는 ‘경계에 서다’ 시리즈들이 시간의 흐름으로 공간을 채울 것이다.
또한 각각의 그림에 숨어있는 스토리와 자연물들이 품고 있는 다채로운 의미들은 한국화를 보는 재미를 더하게 하는데,
관물청심(觀物聽心, 물경을 바라보며 마음을 듣는다)-구여에 등장하는 물을 거슬러 뛰어오르는 물고기는 출세와 입신양명, 부귀, 다산, 장수와 번영의 기원을 담고 있으며,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이 사라진 상태에서 들리는 가장 순수한 물성의, 살아 있는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시가 그림이 되고 그림이 시가 되었던 한국화의 정서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고, 선과 여백의 미(美) 속에서 쉼의 일상을 먹 향과 함께 느린 호흡으로 느껴 보길 바란다.
2022.9월 갤러리조이 최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