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경 개인전 HAPP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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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회로’를 보는 즐거움
前 부산현대미술관 큐레이터 김영준
사실, 당혹스러움으로 시작했다. 작년부터 작업해왔던 신작들에 대해서 작가는 하나하나 얘기한다. 작가 조부경은 최근 작업에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고 했다.
조부경의 작품은 색면 추상, 평면성, 모더니즘 회화와 같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작가는 오랫동안 이 범주들 안에 서 작업해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가의 작업에 대한 일견한 인상들로 평가한다. 커다란 변화가 없고 형 태나 색의 구성에서 작은 변주만 있다거나, 모더니즘 색면 추상 회화라 소위 올드 패션으로 감각해 낸다. 그러나 작 가는 이러한 평가와 감각에 유념하지 않는 것 같다. 아마도 색면 추상이나 모더니즘 회화라는 범주에 작품이 배치 된다는 것 차체에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이 객관화의 범주 안에서 작가의 작품을 본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이 다. 필자 역시 작가의 신작들을 목격하면서 ‘변화’를 찾아내는데 많은 시간과 관찰이 필요했다.
주어진 단서는 여전히 필자가 열거한 조건과 범주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다른 얘기를 한다. 아니 그 조건과 범주를 외면한 채 자신의 얘기를 한다. 분명 작가로서는 정당한 행위였다. 그럼에도 당혹감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작가 는 변화를 얘기했고 그 변화를 위한 ‘시도들’에 대해 얘기했다. 찬찬히 작가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비로소 작가와 작품이 하나 되기 시작했고 그 일관성이 정당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2021년도부터 시도한 변화들은 그야말로 음악 의 변주곡처럼 자신만의 공리 속에서 다채로움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녀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몇 년 전 부산의 모 공간에서 열린 개인전이었다. 그때의 작품을 기준으로 본다 면 지금의 것은 훨씬 밝아졌다. 하지만 색면들 간의 경계는 오히려 모호해졌다. 명도는 높아졌지만 채도는 떨어졌 다. 대체로 파스텔 톤으로 바뀌어 전체적으로 화사해 졌지만 과거의 작품보다 힘을 빼고 있는 것 같다. 관찰자가 힘 들게 관찰할 수 있었던 이 미묘한 바리에이션은 작가만의 독특한 감성의 변화에서 기인한 듯하다,
예컨대 훌륭한 대장장이의 작품을 본다거나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을 때 우리는 한없는 감동을 받는다. 이 런 시간들의 소중함을 기념하고자 찬사를 보내고 눈으로, 귀로 각인시킨다. 대장장이의 명품 칼이나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다. 이 시간이야 말로 빛나는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명장의 칼이 만 들어지는 과정을 상상할 수 없으며, 피아니스트의 연습량을 가늠할 수 없다.
조부경의 특히 최근 작업에서 칼 만드는 명장이나 피아니스트 연주의 바리에이션을 느낀다. 쇳덩이가 수차례 담금 질과 망치질 과정을 겪어야 명품의 칼이 만들어 지는 것과 같다. 명장은 담금질이나 망치질의 횟수 부족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원래 장인의 습성이 그렇다. 하지만 일반 관찰자라면 완성된 칼에서는 장인이 만족할 만한 과정을 모두 겪어낸 결과물인지 알 수 없다. 피아니스트의 경우도 그렇다. 명곡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수십, 수 백번 의 연습과 리허설 과정을 겪었을 테지만 우리는 최상의 컨디션에서 연주된 단 한 곡을 들을 뿐이다.
조부경의 그림은 담금질처럼 색 위에 색을 수차례 반복해 올린다. 색상환에서 선택할 수 있는 색이라면 이러한 반 복적 칠하기는 부질없는 행위다. 그런데 계속해서 시간과 행위를 누적시킨다. 색들의 겹침은 이웃하는 색들과 아주 미묘한 차이를 만든다. 언뜻 봤을 때 발견할 수 없는 차이들이 여럿 포진해 있다. 이 차이야 말로 그림의 깊이 감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행위이다. 이것이 그저 단순해 보이는 ‘색면 추상’으로 범주화시키기에 궁색해 지는 이유이다.
새로운 변화 중에 가장 큰 것이라면 이번 시리즈에 곡면이 등장한다. 이 곡면은 그저 작가가 주관적인 충동으로 만 들어낸 곡선이 아니다. 작가의 작업실은 좀 오래되긴 했어도 작은 정원이 딸린 주택이다. 작가는 거의 모든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 그러니 그의 시각은 일상에서 그 공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계단 난간의 장식을 위해 만들 어 놓은 곡선들처럼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에 거의 눈에 띄지 않은 곳곳의 형태를 차용하기 시작했다. 이 곡면의 등 장과 색들의 변화는 작가의 거주환경이 현실적으로 드러난 추상적 사생이라는 느낌이 든다.
추상적 사생이라는 비논리적 표현을 굳이 들인 것에는 작가가 자신에게 주어진 작업실 환경에서 오랫동안 작업해 왔던 시간과 거의 반복되는 행위들의 누적을 목격한다면 이해할 것이다. 작가는 넓지 않은 작업실과 정원,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는 많은 일상생활품과 하나의 몸이 되어 캔버스에 행복 회로를 그린다. 그녀가 작품과 전시주제에서 ‘행 복’을 강조했던 것, 처음엔 좀 상투적인 주제 같았지만 지금 작가의 작품을 관찰하면서 그녀의 행복 회로 그리는 작 업에서 진짜 ‘장인’이나 ‘명장’과 같은 포스를 느낀다.
이번 변주곡들에 대한 기대와 또 계속될 작가의 감성과 상상에 더없이 기대된다.